공개 독서기록일지

한낮인데 어두운 방
책제목 : (내 몸 지키는)천연양념 216선
작성자 : 이*진
작성일 : 2017.04.17


나의 고향은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모두 정읍에서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정읍이나 순창은 모두 물 맑고 공기가 좋다.

어머님은 나이 마흔에 날 낳아고, 지금은 84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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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모두 정읍에서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정읍이나 순창은 모두 물 맑고 공기가 좋다.

어머님은 나이 마흔에 날 낳아고, 지금은 84세의 할머니이지만, 나에겐 어머니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손에 자라지 않고,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그러다보니 어릴때부터

다른 친구들과 같이 인스턴트 음식과 가공된 맛있고 먹고싶은 음식은 별반 접하질 못

하였다. 하지만 지금 조리사의 입장이 된 본인에게는 그러한 어린 시절이 얼마나 복받

은 것인지 감사하게 생각한다.

요리를 하면서 이 차이는 매우 컸다. 나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솔직이 입에도

맛지도 않지만, 맛있는 줄도 모른다. 와이프는 설겆이 하기 싫어서 오늘 저녁도 동네

음식점에서 배달을 하고 있지만, 나는 정말 싫다. 그래서 집에서 요리는 99% 내가 한

다. 전에는 안했던 요리를 하려다보니 맛이 안난다.

합성조미료는 아예 없다. 유일하게 집에서 먹는 가공조미료가 라면스프다

그래서 이 책에 눈이 갔고, 손이 갔다.

지금 당장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천연조미료였다.

미역국을 끓여야하는데, 주 재료는 미역, 물, 소금이다. 아니 이었다.

멸치를 넣을까, 바지락을 넣어볼까, 이런 생각은 학원에서 요리를 배우고,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할 때의 생각이다.

지금은 냉동실에 믹서기로 갈은 여러 가루들이 많다.

마른 새우가루, 멸치 머리와 뼈만 갈은 가루, 다시마 가루 등등

이제는 미역국이며, 다른 여타 탕이며, 나물이며, 국이며 할 것 없이 맛을 내기는

땅 집고 헤엄치기다. 이전에는 몰랐다.

이 책의 도움이 컸고, 또한 아직 해보지 못한 재료들, 양념 가루들이 너무 많다

준비할 것도 많다. 진공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병도 필요하고, 믹서기도 좀 더

다양한 것들도 필요하다

끝으로, 오늘의 킥! 일반 가정식 맛을 못내고 계신 주부분들에게 이 책을 진심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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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책제목 : 심청가
작성자 : 정*이
작성일 : 2017.04.12

심청가.

동화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따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동화책으로 읽으니 이야기와 표현의 풍부함이 참 좋게 느껴진다. TV에서 판소리를 잠깐씩 스치듯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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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동화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따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동화책으로 읽으니 이야기와 표현의 풍부함이 참 좋게 느껴진다. TV에서 판소리를 잠깐씩 스치듯 보면 언제나 그 표현이 풍부하고 신선하여 인상 깊었는데 이 짧은 동화책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졌다. 그리고 삽화도 조금 선이 굵어 투박한 듯 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 마음에 들었다.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은 심청이네가 살았던 곳은 황해도 황주이며,

심봉사의 아내는 곽씨부인으로 생전에 심학규를 잘 봉양하였다는 것,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 선녀가 된 곽씨부인을 만나고,

심봉사가 심청을 만나 눈을 뜰 때 세상 봉사들도 다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게 된 것은,

인당수는 서해 백령도와 북한 장산곶 사이에 물살이 아주 거친 해역이 있는데 이곳이 아마도 인당수 같고, 

심청전은 판소리와 관계 없이 설화가 소설이 된 경판본과, 판소리가 소설이 된 완판본이 있으며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 

그리고 심청가는 판소리 <춘향가> 다음으로 문학적이고 유명한 대목이 많아 <작은 춘향가>로도 불린다는 점, (심청가, 다음백과 설명 참조)

그리고 이 심청전의 근원이 된 설화는 삼국사기의 <효녀 지은> 설화라는 점이다. 


효녀 지은 설화는 읽고 정리해보면, 

신라에 효심이 지극한 지은(32세)이 홀로 된 어머니를 봉양하다 너무 가난하여 남의 집 몸종이 된다. 몸종이 되어 밥을 지어 드리자 어머니가 말하길 "이 전에는 나쁜 밥을 먹어도 속이 편했는데, 지금은 밥이 좋아도  속이 칼로 베인 듯 아프니 어찌된 일이냐?" 물었다. 그래서 지은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두 모녀가 목 놓아 우는데,  지나가던 화랑 효종랑이 듣고 쌀 100석과 옷을 보내주고 지은을 산 집에 돈을 주어 종 신분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화랑들과 나라에서도 효녀 지은에게 감동하여  많은 기부와 상을 베풀었다는 얘기이다.


 <심청가>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부분을 정리해보았는데 이제는 '효'라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기본 도리로 효를 내세워왔다. 그러나 요즘은 효를 행하기에 힘든 세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 한 몸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도 너무 고달프니까. <이기주의>로 팽배한 세상 속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진이 빠질 지경이니까 말이다. 거기다 부모와 나이든 자식이 같이 사는 경우도 드물고 옛날처럼 '효부, 효자, 효녀'를 열렬히 칭송하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다. 물론 효녀 지은이나 심청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효녀 지은이나 심청이가 칭송받는 것도 그만큼 힘든 여건(가난)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해 효를 행하였기에 더 대단하다 느껴지는 것일 게다. 물론 그들은 위대하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 도리인 '효'보다  우선은 <자신이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런 사회 분위기가 더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살기  바빠  불행한 젊은 세대들이  윗사람들에게 강요받는 <효>가  달가울 리 없다. 사회인으로 직업인으로 살 맛나는 분위기가 있을 때 인간의 기본 도리도 더 많은 사람들이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젊은 세대의  <효>를 강조한다면  윗세대의  <자애>도 그만큼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효녀 지은이나 심청 같은 슈퍼 효녀는 적게 나와도,  준효녀들과 준효자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부모와 자식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일방통행보다 쌍방통행이 더 수월하고 끈끈한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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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책제목 : 남한산성 : 김훈 장편소설
작성자 : 정*이
작성일 : 2017.04.05

김훈의 <남한산성>.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읽기도 전에 '난 이걸 다 읽고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것이다' 라 예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 읽은 지금 나는 줄거리도 다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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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남한산성>.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읽기도 전에 '난 이걸 다 읽고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것이다' 라 예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 읽은 지금 나는 줄거리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작가가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도 글을 쓰는 지금은 잘  파악하지 못한다. 다만 개인적인 정리를 위해 책을 한 번 읽고 난 인상적인 느낌과 이번 독서로 얻어갈 의미들을 독서일지를 쓰는 도중에 찾고 싶을 뿐이다.


우선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조선 조정과 산성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산성 안에서 말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청병(용골대, 정명수, 칸 등)들의 이야기이다. 추운 겨울이란 시간적 배경과, 자원이 한정된 '남한산성'이란 막힌 공간적 배경 속에서 시원스런 답도 없이 식량, 무기, 군사들을 소진하며 나날이 말라가는 산성 안의 상황은 '속 터짐' 그 자체이다. 거기다 무엇이 좋은지 알 수 없게 하는 신하들의 말들, 이거다 저거다 적을 향한 뚜렷한 의지도 표현하지 않는 인조, 또 성이 빨리 말라가길 은근히 획책하는 영의정 김류, 걸핏하면 주화파 최명길의 목을 베라는 대다수 척화파 당하관들(그럼에도 청에서 화친의 표시로 척화파를 묶어 보내라 할 때, 그렇게 떠들던 그들은 나서지 않았다). 읽으며 그래도 지조 있는 충신으로 보이는 예조 김상헌(그는 왕에게 심지를 굳게 하여 성 밖 지방 군진들과 연락해 함께 힘을 합쳐 청에 맞서 싸우면 길이 있을 것이라 계속 주장한다) 마저도 한편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아 조금 답답해 보인다. 그렇다면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은? 최명길과 김상헌은 주장이 다르지만 작품 속에서 둘 모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옳다고 여기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최명길은 조선 조정에서 오명을 뒤집어 쓰지만 그는 어찌됐든, 삶을 이은 다음에야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음을 가장 무겁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살기 위해 오명을 뒤집어 쓰느냐? 오명을 뒤집어 쓸 바에야 죽음이 나은가? 죽음을 각오하면 살 길이 있는가? 이순신은 죽음을 각오하여 살 길을 열었다. 김상헌도 말한 그 길을 인조는 가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면 살 길이 있었을까? 아니 김상헌이 말한 길을 포기하고 최명길의 길을 택한 인조는 그 굴욕을 견디고 '값진 삶'을 살았는가? 그 굴욕을 견디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며 살았는가? 역사 지식이 부족한 나는 인조가 이룬 값진 업적을 잘 알지 못한다. 전쟁을 끝마쳤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값진 업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니 인조가 투항한 후, 글의 끝에 나오는 산성 대장장이 서날쇠가 성으로 돌아와 일상을 찾는 모습이 인조의 굴욕이 준 가장 값진 업적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의 표현법이다. 답답한 상황들을 참신하고 예리하고 때로는 속 시원하게 표현한 작가의 문체가 아니었다면 나는 중간에 독서를 포기했을 것이다. 답답한 상황들을 감상에 치우쳐 지저분하게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설명하듯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해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황은 답답하고 처참한데 그 인간사와 상관없이 풍경은 또 풍경대로 담담하게 묘사한다. 또 어느 때는 그 자연도 조선의 얼음을 담은 것처럼 보이나 조선을 동정하지 않고 그 얼음을 담은 채 제 갈 길을 갈 뿐인 그런 자연이 글 속에 있었다. 작가의 시선이 상황과 무관하거나, 공감을 받아들여 준다 해도 동정하여 다정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이 글을 읽으며 받은 전체적인 느낌은 조선에 적극적으로 동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분노도 느껴지지 않으며 답답한 상황의 표현은 시원할 정도로 날카롭다. 이를 테면 엄마를 감정 없이 지켜보는 아들인데 아무 느낌 없이 시원스레 독설도 하는 느낌? 전체적으로 보면 조선에 동정적이다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깊게 파헤치진 못하고 일차적으로 글에서 받은 개인적 인상은 그러하다.


한 가지 더, 이번엔 왜 이런 내용을 이렇게 썼을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소설은 단순한 문장으로 된 주장보다 공감을 더 깊이 이끌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 입장을 헤아려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더 깊은 공감을 할 수도 있고 지은이가 목적한 바를 떠나서 독자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몰랐던 정보를 아는 것도 있지만, 인물에 대한 공감, 그리고 각자에 던져진 화두와 그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왜 이 글을 썼을까? 남한산성에 있었던 그들을 작가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남한산성에서 그 시간을 버티며 그들이 있었다. 인간적으로 휘청휘청 거리는 그들이 모두 있었다. 인조, 의지에 차 있었던  김상헌, 무엇이 중한지 자신을 알고 있었다 생각해 오명을 뒤집어쓴 최명길, 말과 함께 휘청거리며 말에 놀아나는 신하들, 똘똘하여 삶을 이어갈 백성 대표 서날쇠,  동정없이 약삭빠른 영의정 김류, 없는 자원으로 고된 살림을 하는 나인들, 동상으로 살이 터지는 군사들, 그들이 모두 남한산성에 있었다. 그리고 성 밖에 날카롭고 당당한 적들이 있었다. 그들을 작가는 밖에다 글로 표현하고 탄생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한산성에 있던 그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내가 짐작하기엔 그렇다. 그들을 작가는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버텨야 했던 그들에게 작가는 연민을 느꼈기에 그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혼자서 짐작해 본다. 그래서 작가는 '정신 못차리면 이런 역사도 겪는 거야' 라는 주장보다 그들을 우선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세상사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겪고 싶지 않은 굴욕을 견뎌야 하는 날도 있다. 그걸 알기에 그 굴욕을 버텨야 했던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보람 없이 악전고투하는 그들, 울음을 삼키며 처절한 상황을 버티는 그들. 그러나 병자호란은 세계정세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명에 대한 사대만을 주장하여 조선이 청에 함부로 무례를 범해 벌어진 일이라 알고 있다. 청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인 만행은 극악할 것이나 조선이 청을 업신여겨 자초한 일이다. 그런 조선 조정의 무례로 백성이 도륙당하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어야 했다. 잘못된 판단으로 외교를 함부로 행하여 그 피해를 온 백성과 나라가 당하니 나라를 대표하는 관리들과 지도자들의 관점과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주는 사건이 병자호란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얼까? 그들의 처절함을 안다면 그들을 동정한다면.. 그렇지만 우리는 한가로이 그들을 동정할 처지인가? 몇 년전만 해도 외국에서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는 등 무례를 범해 화를 자초하는 작은 소동들이 계속 있었다. 단순히 외교만이 아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있었다. 청와대에 그들이 있었다. 굴욕은 청와대 밖 국민들의 몫이었다. 국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무례를 범한 그들은 청와대에서 이런 저런 말들 속에서 버텼으리라. 국민들은 청와대 밖에서 굴욕을 씻기 위해, 자기 존엄을 위해서 '탄핵'을 외쳤다. 마침내 그들은 청와대를 나왔고 다시 시계추가 돌아간다. 역사가 이어져 흐르고 있다. 도를 넘어 무례를 범하면 무례를 당한 상대는 결국에는 굴욕을 씻기 위해 더 큰 굴욕으로 그 자를 무릎 꿇린다는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청와대는 비워졌고 서날쇠는 생업에 돌아간 다음, 5월에 새 지도자를 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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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책제목 : 연오랑과 세오녀
작성자 : 정*이
작성일 : 2017.04.11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어렸을 적 대충 내용만 알고 있었던 옛날 이야기였다.

다시 한번 어떤 이야기인가 싶어 읽으니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라 8대 임금 아달라왕때 금슬 좋은 연오랑(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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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어렸을 적 대충 내용만 알고 있었던 옛날 이야기였다.

다시 한번 어떤 이야기인가 싶어 읽으니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라 8대 임금 아달라왕때 금슬 좋은 연오랑(어부)과 세오녀(베 짜는 여성) 부부가 일본으로 우연히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그러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아달라왕이 일관에게 물으니 해와 달의 기운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리 되었다 말한다. 아달라왕은 일본의 연오랑과 세오녀를 찾아가 신라로 돌아오라 하였으나 대신 세오녀가 자신이 짠 비단을 주어 제사를 지내라 했다. 세오녀 말대로 그리하니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그 비단을 왕실 보물창고에 보관하고 창고의 이름을 '귀비고'라 하고  그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이라 부르니 '해를 맞이한 곳'이란 뜻이다. 그 곳이 지금  포항의 '호미곶'이라 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보았다. 이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이야기로 문헌에 기록된 유일한 일월신화에 해당된다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 이름 자체에 들어있는 까마귀 오(烏)도 태양에 산다는 삼족오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이야기를 보면  8대 아달라 이사금 때 신라 연맹체를 이루던 일부 세력이 이탈하여 왜로 건너간 이야기라는 설이 있다. 이전에 KBS에서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를 추적해보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던 것 같은데 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사로국이 주변 국가들을 복속하는 과정에서 포항에 있던 근기국이 있었는데 그 근기국의 핵심인물(발전된 직조기술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들이 사로국에 복속되기 보다 새로운 땅으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다큐는 그곳이 일본의 오키섬이며 오키섬의 이즈모 건국신화에 그들에 대해 사로국에서 온 한쌍의 목엽인(짐승가죽옷과 나무껍질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즈모국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진실은 그 시대 사람들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그래도 '진실'이라 추정할 만한 근거들이 있어 이 추정에 어느 정도 생각이 기운다. 또 '그런 근거들이라도 남겨진 게 어딘가?'하는 기쁜 마음도 든다. 또 아니면 어떤가? 여러 가능성들을 혼자서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런 내용들을 알게 되니 짧은 동화책이지만 새삼 그 짧은 이야기에도 고대의 실마리들이 숨겨져 있음이 신기하다. 생각해보면 '전설', 애초에 가벼이 흘려들을 '전설'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세월이 흘러 시간이 덧칠해졌어도 그 실마리가 잡힐 듯 안 잡힐 듯 숨바꼭질하듯 섞여있는 옛이야기들, 동화들. 이 동화들이 진정한 보물들이 아니고 무엇일까? 아주 먼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오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답고 멋진 보물들. 그래서 이 보물들이 많은 '우리'여서 재미있고 사랑스럽고 뿌듯하다.


참고로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이 동화책은 권하고 싶진 않다. 동화에 관련된 짧은 설명도 실려 있지만 삽화중에 해를 표현하는 데 있어 개인적으로 욱일승천기 모양이 조금 연상되는 면이 있어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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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책제목 : 사라진 공주 :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에 얽힌 고구려이야기
작성자 : 정*이
작성일 : 2017.04.01

사라진 공주는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에 관한 이야기이다.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 새로울 것이 없다 생각하며 책을  열었지만 새로운 스타일로 창작된 동화여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줄거리는 고구려 귀족의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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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주는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에 관한 이야기이다.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 새로울 것이 없다 생각하며 책을  열었지만 새로운 스타일로 창작된 동화여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줄거리는 고구려 귀족의 자제인 아이들이 평강 공주가 사라졌다는 이야길 듣고 공주를 찾으러 다니는 것이 큰 줄기이다. 때문에 단순히 평강 공주 얘기를 들려주는 스타일이 아니고 3자의 관점에서 추리하는 스타일로 이야기가 전개돼서 나름 신선했다.


그러나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이야기의 무대들이 옮겨지면서 독자가 고구려의 생활 방식을 견학하듯이 알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다. 쪽구들과 같은 주거 방식, 의복, 태학과 경당이라는 교육기관, 부경이라 불린 창고, '서옥제 (데릴사위제)' 같은 혼인 풍습 등등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고구려를 알 수 있고 좀 더 자세히 부연설명도 싣고 있어서 고구려인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짐작할 수 있다. 역사 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킬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도, 역사에 관심있는 어른들에게도 유익하리라 여겨진다. 


사람들은, 흔히 능력 있는 여자와 그 녀에게 기대는 남자의 조합을 일컬어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커플'이라 칭한다. 그러나 <역사저널 그날>에서 다룬 바에 따르면 바보 온달은 진짜 '바보'가 아니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행색이 말이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이 놀리듯 바보라 말했을 뿐 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온달은 후에 삼국사기의 열전에 기록될 정도로 고구려의 충신으로 칭해진 사람이었다. 그런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 형편 때문에 '바보' 라 놀림 받는 세월을 견뎌야 했다는 것이 한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늘날에도 다른 부차적인 요소에 가려져 온달처럼 '바보' 같은 서글픈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들이 가진 씨앗을 힘차게 싹틔울 탄탄한 대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본다.


온달은 후에 신라와 싸우다 전사한다. 시신을 수습해 장사 지내려 했으나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평강 공주가 급히 달려와 달래자 관이 움직였다고 하니 그가 이승에 맺힌 한이 얼마나 컸는지 헤아려 볼 수 있다. 자신의 생애에 대한 회한과, 자신을 일으켜준 평강 공주를 두고 가는 그의 처절한 마음이 왠지 전해지는 것 같다. 평강 공주는 지혜로써만 온달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온달의 됨됨이를 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모두 옛이야기고 그들 모두 옛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새삼 다가오는 것은 우리들 모두도 미래엔 다 옛사람이 되는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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